고토히라궁

고토히라궁 오디오 가이드

선택하신 언어로 다음 내용의 음성 가이드가 재생됩니다.

소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곤피라산’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고토히라궁의 여러 유적지를 돌아보시는 동안 여러분께 해설을 제공해 드릴 오디오 가이드입니다. 이 신사는 조즈산의 동쪽 기슭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코끼리 머리라는 뜻의 ‘조즈’라는 이름이 붙은 조즈산은 그 이름처럼 코끼리의 머리와 모습이 닮아 있습니다. 고토히라 마을에서 본전까지 가려면 78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그런 다음 583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이즈타마 신사가 나옵니다. 오쿠샤(뒷신사)로도 알려진 곳이죠. 이곳은 오늘 여정의 최종 목적지이자 이 신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여러 박물관과 역사 기념물, 그리고 동물들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흥미로운 장소가 가까워지면 오디오 가이드가 자동으로 재생됩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참배객들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곤피라산이 정확히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소 3,000년은 넘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신사는 특히 성지 참배를 주된 이유로 삼아 여행을 떠났던 17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일본 주변국의 종교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곤피라산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시코쿠섬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토’의 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신들 중에는 고대 일본 신화에 기원을 둔 신도 있고, 자연 현상 혹은 역사적 인물의 영혼인 신도 있습니다. 곤피라산 본전에 모셔진 신은 과거 천황의 신격화된 영혼과 바다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신입니다. 곤피라산에는 다른 신들을 모시는 부속 신사도 여러 곳 있습니다. 이곳은 한때 불교 신들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불교 건축 양식을 따른 건축물들을 마주치게 되실 거예요.

그럼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서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보세요. 다음 오디오에서는 이 순례길의 첫 구간에 대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치노사카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늘어선 이 구역은 ‘이치노사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몇백 년 동안 상인들은 이 계단 주위에 노점을 열어 참배객들에게 간단한 식사나 기념품을 판매했습니다. 일부 노점에서는 곤피라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탕인 ‘카미요 아메’를 판매합니다. 단단한 부채 모양에 유자 맛이 나는 사탕입니다. 이 사탕은 행운을 상징하며, 포장 안에는 사탕을 작게 깨트려 행운을 나눌 수 있도록 작은 망치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길의 왼쪽에는 지붕 덮인 보행로처럼 보이는 목조 건축물이 있습니다. 안쪽에는 등불이 달린 줄이 매달려 있어 밤에도 길을 환히 비춰줍니다. 이 건축물은 세토 내해 반대쪽에 살았던 목수, 목공, 석공, 미장공, 지붕 수리공 등으로 이루어진 한 상인 무리가 1858년에 기증한 것입니다. 명판에는 기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도목수들이 못을 사용하지 않고 구조물을 짜맞추는 일본 전통 이음 기법을 사용하여 세운 것입니다. 아주 깔끔하게 맞춰진 접합부를 통해 이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계단 아래의 땅이 평평하지 않은데도 말이지요. 이곳은 선박의 선체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목재로 건립되었는데, 이는 선원 및 바다와 깊은 관련이 있는 신사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 건축물에서 본전까지 617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 오디오는 곧 도착할 휴게소에서 재생됩니다.

고토오카 히로츠네 상

길 오른쪽에는 휴게소가 딸린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곤피라산의 제19대 최고 신관을 지낸 고토오카 히로츠네(1840~1892)를 기리는 공간입니다. 1800년대 후반, 일본이 몇몇 서방 국가와 무역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해상 운송로에 외국 선박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심각한 난파 사고가 발생하자, 히로츠네는 1889년에 제국해양구조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이후 일본해상구조대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이 조직은 오늘날에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터 저편에 세워진 히로츠네 동상은 19세기의 구조 장비 전시물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일본해상구조대원들은 물론, 일본해상보안청과 해상 관련업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히로츠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곳으로 참배하러 옵니다.

여기에서 본전까지 497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 음성 안내는 사찰로 들어가는 대문에서 재생됩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문, 대문

사찰로 들어가는 문인 대문에는 신을 모신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로 경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시메나와’라고 하는 새끼줄이 경계선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며, 신사(神社)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새끼줄은 이것처럼 정교한 2층 건축물에는 흔히 걸어두지 않습니다. 곤피라산의 대문은 불교 사찰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곳에 불교 신들을 신토의 신들과 함께 모셨던 1649년에 세워졌지요. 이 문은 구역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불교 건축물 중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곤피라산이 신토만을 모시는 장소가 되었던 19세기에 들어서고 난 후 정문에 시메나와 새끼줄이 추가되었습니다.

정문까지 이르는 길에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지만, 신성한 신사 경내에서는 오직 다섯 가문만이 기념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가판대는 대문 안쪽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상인들은 수백 년 전에 곤피라산의 유명한 사탕, 카미요 아메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다섯 가문의 후손입니다.

대문에서 본전까지 420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 음성 안내는 보물관에서 재생됩니다.

사쿠라 바바

곤피라산 사찰로 들어서는 대문에서부터 이어지는 150m 길이의 이 자갈길은 ‘사쿠라 바바’라고 불립니다. 매년 봄이 되면, 길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를 보러 수천 명의 방문객이 찾아옵니다. 실제로, 보물관에 있는 18세기의 신사 경내 그림에는 이 구역에서 사케를 홀짝이는 사람들과 벚나무 아래에서 쉬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벚나무를 따라 이어지는 길가에는 글자가 새겨진 석주와 등불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이 기념물들은 각각 신사에 대한 거액의 기부를 기리는 것으로, 기부자의 이름과 지역, 기부 금액, 날짜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의 석주 대부분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이지만, 세월에 마모되고 이끼로 뒤덮인 훨씬 오래된 비석들도 지나치게 될 것입니다.

사쿠라 바바 끝에 다다르면 계단이 몇 개 더 나옵니다. 맨 위에 도착하시면 강아지 동상을 찾아 보세요.

보물관

길 오른쪽에는 보물관이 있습니다. 갖가지 귀중한 유물과 기증받은 미술품, 기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소장품 중에는 한때 수많은 참배객들을 불러 모았던 불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 목조상입니다. 본전 안에 신토의 신과 함께 나란히 모셔졌던 목조상이지요.

보물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물품 중 하나는 18세기에 그려진 신사 진입로 그림입니다. 그림에는 이 길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북적이는 군중 속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활동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죠. 예를 들면, 계단을 오르기에 앞서 몸을 씻어 정화하는 참배객들의 모습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전시물로는 사무라이 갑옷과 검 같은 귀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곤피라산은 항해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 바다와 관련된 물품이 많습니다. 조선 회사가 기증한 정교한 모형 보트처럼 말이지요.

보물관 건물 그 자체는 전통 박공 양식의 입구와 화강암 외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일본과 서양의 건축 요소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쿠루 마사미치가 설계하여 1905년에 완공한 곳입니다. 쿠루가 설계한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의 일본 전시장은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 건축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편하게 보물관에 입장하여 감상해 보세요. 참배길로 돌아오시면 음성 안내가 다시 재생됩니다.

다카하시 유이치 박물관

이 박물관에는 다카하시 유이치의 유화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카하시 유이치는 1828년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일본은 거의 200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 미술에 익숙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다카하시가 성인이 되었을 때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럽과 북미에서 온 문화적 영향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유화에 특히 흥미를 보였습니다. 일본 전통 미술은 정형화된 경향이 있었지만, 다카하시는 유화 기법으로 구현되는 사실주의적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나아가 일본 예술가들 사이에서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예술가들의 지도를 통해, 그는 유화 기법을 익히고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다카하시는 일본의 유명한 장소, 염장 생선이나 두부 같은 일상적 소재 등 익숙한 것을 소재로 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림으로써 일본인들 사이에 유화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다카하시는 1880년부터 1881년까지 고토히라 마을에 머물면서 신사의 최고 신관들의 초상화와 ‘고토히라산 원경’이라는 작품처럼 현지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신사는 현재 다카하시의 그림 27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순례길을 계속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 마음껏 둘러보세요.

곤피라견 동상

곤피라견 동상이 계단 구간의 시작점에서 마치 기다리듯 앉아 있습니다. 귀엽고 만화 같은 모습을 한 이 동상은 삽화가 유무라 테루히코가 제작한 것으로, 충직한 개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세워졌습니다. 곤피라견은 신사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 대신 신사에 기부금을 전하러 보내졌던 네 발 달린 참배객이었습니다. 개의 주인은 신사의 이름과 본인 집 주소를 적은 목걸이, 그리고 이동 경비와 신사에 전달할 기부금을 담은 주머니를 개의 목에 매달았습니다. 곤피라견은 다른 참배객들과 함께 이동했으며, 기부를 하고 난 뒤 개는 여러 여행자를 거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유무라가 제작한 동상의 개 이름은 ‘곤’입니다. 목에 걸린 표지판에는 “고토히라궁으로 참배하러 가는 중,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라고 적혀 있습니다. 바빠서 책상 앞을 떠날 수 없는 학생을 대신해서 충직한 개가 여행을 떠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곤피라견은 신사에서 판매하는 수호 부적, 소원 나무판, 기념품 속에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독특한 역사 덕분에, 현재 곤피라산은 애견 친화적인 신사입니다. 목줄을 맨 개는 신사 경내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건물 내부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공터 주변에 볼거리가 많으니, 계단을 더 올라가시기 전에 이곳저곳 둘러보세요. 다음 음성 안내는 다카하시 유이치 박물관과 신성한 말들의 마구간에서 재생됩니다. 두 곳 모두 이 구역에 있습니다. 이 두 곳 다음으로 방문할 장소는 이 계단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신성한 말

이곳 마구간에는 곤피라산의 신성한 말인 ‘신메’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신메는 오직 신토의 신들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길러집니다. 제의 등을 위해 신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질 때 이 신메에 안장을 얹는데, 바로 그 안장에 신이 올라탄다고 여겨집니다. 신메의 안장에 사람이 올라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관습이 더 흔했으나, 오늘날 신메를 계속 두고 있는 곳은 곤피라산을 포함해 몇몇 신사뿐입니다. 특정 품종이 신성시되는 것은 아니며, 신사에 기증된 말들 중에서 신메가 선정됩니다. 말을 봉납하는 풍습은 약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대체로 중대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중요한 기도를 올릴 때 행해졌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참배객들은 실제 말 대신 작은 말 조각상이나 다른 그림들을 봉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린 말이라는 뜻을 가진 소원 나무판인 ‘에마’를 봉납하는, 현재 널리 퍼진 관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곤피라산을 비롯한 많은 신사에서 말 등의 문양이 그려진 소원 나무판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서원 접견실

곤피라산의 가장 유명한 작품 몇 점은 참배길 오른쪽으로 곧 도착할 단지 내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단지는 오모테 서원, 오쿠 서원, 시로 서원이라고 하는 서로 연결된 세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7에서 19세기 사이에 세워진 이 건물들은 접견실, 그리고 신관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오모테서원만 정기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담장과 미닫이문에는 각 방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뛰어난 회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이 그림들은 주변 풍경에 조화롭게 녹아듭니다. 예를 들면, 어떤 방에 그려진 강과 폭포는 자연스럽게 바깥에 있는 연못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들을 남긴 화가들은 정교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모리 간사이가 그린 입구의 그림에는 금박 배경으로 사나운 독수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무라타 단료가 그린 뒤쪽 방의 그림은 수십 명의 말을 탄 사냥꾼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안개 낀 후지산 풍경을 담아냈습니다. 중간 방의 그림은 자연주의적 방식의 선구자였던 18세기 화가 마루야마 오쿄의 작품입니다. 그 예로, 오쿄는 ‘학의 방’에 있는 그림에 두 가지 토착종 학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두 종의 특징을 정확히 담아냈습니다. 오쿄의 사실적인 묘사는 ‘호랑이의 방’에서만 예외를 보이는데, 방 안을 둘러싼 맹수들이 예상외로 둥글둥글하고 통통하게 그려져 있지요. 살아 있는 호랑이 표본을 관찰할 수 없었던 오쿄는 집고양이를 참고하여 호랑이를 그려야 했습니다.

오모테서원의 외부 공간은 때때로 ‘케마리’라는 의식을 치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공을 사용하는 의식으로, 제기차기와 비슷합니다. 경기장은 각기 다른 수종의 갈라진 네 개의 나무로 표시되어 있는데, 카미가 의식을 관람하는 동안 그곳에 머문다고 전해집니다.

오모테서원에 방문하여 자유롭게 둘러보세요. 여기에서 본전까지 308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 음성 안내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에서 재생됩니다.

카페 겸 식당 카미츠바키

곤피라산 방문객들은 참배길을 오르는 도중에 종종 이곳에 들러 쉬곤 합니다. 이곳에는 1797년, 방문객들을 위해 찻집이 처음 생겼습니다. 지금은 한층 현대적인 모습으로 2007년에 문을 연 카페 카미츠바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메뉴로는 프랑스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현지에서 조달한 재료로 만들어진 가벼운 식사와 아름다운 디저트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식당은 경사면 아래 지하층에 지어져 있어, 참배길과 카페 양쪽 모두에서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활기찬 내부 공간은 밝고 바람이 잘 통하며, 창밖으로는 주황색과 검은색 털을 가진 작은 곤줄박이들의 보금자리인 울창한 숲이 내려다보입니다. 이곳은 신사 방문객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현지 단골 고객들도 자주 찾는 곳입니다.

카페에서 본전까지 285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할 장소는 신사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인 아사히샤입니다.

아사히샤

눈앞에 보이는 정교하게 장식된 이 건물은 아침 해의 신사라는 뜻의 ‘아사히노 야시로’라고 하며, 흔히 ‘아사히샤’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25m 높이를 자랑하는 웅장함 때문인지, 이 부속 신사를 여정의 종착지로 오해하는 참배객들이 많습니다.

아사히샤는 원래 커다란 불상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짓는 데 40년이 걸려 1845에 마침내 완공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완공한 지 몇십 년도 지나지 않아 곤피라산은 신토만을 모시는 장소가 되었고, 수많은 불교 요소를 없애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건물을 허무는 대신, 아사히샤는 신사(神社)로 개조되었습니다. 지금은 신토의 태초 신들 중 하나로 여겨지는 아메노 미나카누시(일본 신화에서 우주의 중심이자 최초의 신)를 비롯하여 여러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건물의 전체 외관 대부분에는 화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처마 아랫면 전체에 소용돌이치는 구름 문양이 펼쳐져 있습니다. 끝서까래와 담장에는 실제 동물과 신화 속 동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중에는 상서로운 상징을 나타내는 동물이 많습니다. 박공 양 끝에 각각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거북이 새겨진 것처럼 말이죠. 다른 예로, 일부 측면에 새겨진 물고기는 물과 관련된 이미지로서, 목조 건축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에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층은 개방형 구조의 넓은 참배실입니다. 중앙 기둥 없이 목조 지붕과 동기와 10,000장의 막대한 하중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상층부에 숨겨진 영리한 외팔보 구조로 인해 하중을 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히샤에서 본전까지 157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다음 음성 안내는 사카키몬에서 재생됩니다.

현재 아사히샤는 습기와 흰개미로 인한 손상을 보수하기 위해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43년에 재개방될 예정입니다.

사카키몬

앞에 보이는 우아한 물결 모양 지붕의 건축물은 신사와 사찰에서 가장 격식 있는 형태의 문인 ‘가라몬’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 문은 16세기에 현지 영주의 의뢰로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건축 과정에서 기둥 하나가 실수로 거꾸로 세워졌는데, ‘기둥이 거꾸로 된 문’이라는 뜻의 ‘사카키몬’이라는 이름은 이 사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1879년에 문을 보수한 후, ‘거스릴 역’자를 ‘어질 현’자로 바꿔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이제 글자는 달라졌지만 발음은 여전히 그대로 ‘사카키몬’입니다.

이 문에서 본전까지 143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지만, 가는 길에 알아볼 장소가 아직 몇 군데 더 남아 있습니다.

빠진 계단

지금까지 계단은 본전으로 가는 방향으로 나 있었지만, 이 앞에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있습니다. 이 여분의 계단은 불길한 숫자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본전으로 가는 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786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일본어 숫자 읽기 방식인 고로아와세로, 숫자 7, 8, 6은 ‘번뇌’라는 의미를 가진 ‘나야무’로 발음됩니다. 이 불길한 연상을 피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추가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올라가는 계단 786개에 내려가는 계단 1개를 추가한 것이지요. 그렇게 총 계단 수가 785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서부터 계단 몇 구간만 더 오르면 본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의식용 수반

신사(神社)에서는 방문객들에게 본전 건물에 가까워지기 전에 신성한 물로 손과 입을 깨끗이 할 것을 권장합니다. 이 용도로 쓰이는 수반은 원래 본전의 북쪽에 있었는데, 1930년에 전망대가 세워진 이후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본전에 모셔진 신과 만나기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계단 한 구간만 남았습니다.

가장 가파른 계단

본전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133개는 가장 가파릅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 도중에 두 개의 작은 신사가 나옵니다. 한 곳은 사업의 성공과 연관된 신을 모시는 신사이며, 다른 한 곳은 농작물을 보호해 주는 신을 모시는 신사입니다. 본전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마지막 부속 신사입니다.

계단 맨 꼭대기에 오르면, 눈 앞에 본전이 바로 보입니다. 왼쪽에 있는 길은 산 아래로 이어집니다. 오른쪽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전망대를 지나 이어지는 길은 뒷 신사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텐구’라 불리는 신화 속 산의 정령들과 관련된 신사입니다.

본전이 있는 계단의 맨 꼭대기에 도착하시면 음성 안내가 재생됩니다. 거의 다 왔으니 힘내세요!

본전

본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백 년 동안 참배객들은 이 숭고한 성지에 닿기 위해 여정을 이어왔습니다.

적어도 3,000년 전부터 신사가 이 절벽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현 건축물은 일본에서 급격한 변화와 근대화가 진행되었던 시기인 1878년에 지어졌습니다. 그때까지 많은 종교적 장소는 신토와 불교 요소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부가 두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곤피라산은 신토만을 모시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본전은 신토 건축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당시 신선하고 새롭게 여겨지는 요소들을 더했습니다. 이는 신토 지도자들이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이루고자 함을 내비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채색 장식 대신, 건축물 전체에 반복되는 당초문이 새겨진 우아한 구리 주물 장식을 채택했습니다. 처마 아래를 받치는 지지목들은 둥근 모서리가 아닌 날카로운 직각으로 깎여 있습니다. 건축물 전체에 사용된 편백나무는 세월이 흐른 탓에 색이 바래 어두워졌지만, 원래는 흰색에 가까웠으며 이는 순수함을 상징했습니다. 지붕은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두껍게 겹쳐 쌓은 노송피로 만든 지붕널은 33년마다 교체됩니다.

신사 경내 전체에 세워진 다수의 초기 건축물에는 주로 동물 모티프의 요소들이 많지만, 이 본전 건물은 식물이, 그 중에서도 벚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당 안 천장에는 깊이감과 광택을 더하기 위해 귀금속 가루를 뿌려 마무리한 옻칠기법으로 표현한 벚꽃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옻칠은 외부 담장에 꽃이 피는 벚나무를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두 가지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연의 여러 힘들을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오모노누시노카미’로, 뱃사람들이 특히 이 신의 수호를 바라곤 했습니다. 또 하나의 신은 스토쿠 천황으로, 실패한 반란을 이끈 후 12세기에 이 지역으로 유배되었던 인물입니다. 유배된 천황이 죽고 난 이후, 수많은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복수심 가득한 원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스토쿠의 원혼은 그가 일본의 수호신으로 추대된 후에야 비로소 진정되었습니다. 스토쿠 천황은 산 위로 138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면 나오는 부속 신사인 ‘시라미네 신사’에도 모셔져 있습니다.

본전 왼쪽의 지붕 덮인 보행로는 본전을 보수하는 동안 주요 신들을 임시로 모시는 부속 신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곤피라산이 불교 신들도 모시던 시기에 이 신사는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이었습니다. 이제 이곳은 오모노누시의 아내이자 농업의 여신인 ‘미호츠히메노미코토’라는 신토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본전 방문은 이번 곤피라산 순례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혹시 계단을 계속 올라 부속 신사들을 좀 더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다음 음성 안내는 전망대와 시라미네 신사에서 계속됩니다.

전망대

이 전망대는 세토 내해가 있는 북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누키 평야의 논과 마을 너머로 뾰족한 원뿔 모양의 이이노산이 보이실 거예요. 이 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후지산에서 이름을 따와 ‘사누키의 후지’라고도 불립니다.

콘크리트 전망 데크 위에 서 있을 때는 알기 어렵지만, 실제로는 천연 절벽면이 본전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참배객 무리와 그 사이를 지나 뒷 신사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통행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1930년, 절벽의 좁은 가장자리를 따라 이 전망 데크가 지어졌습니다.

이곳과 뒷 신사 사이에는 계단이 583개 더 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이 길을 따라 또 다른 부속 신사에 도착하시면 음성 안내가 재생됩니다.

시라미네 신사

이 건물은 1913년에 지어졌으며, 권력 투쟁의 희생자였던 12세기 인물 스토쿠 천황을 모시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스토쿠의 노한 원혼은 그가 신토의 신으로 추대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일본 황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스토쿠는 1123년부터 퇴위 압박에 시달렸던 1141년까지 집권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했습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수도였던 교토에서 가가와의 시라미네라는 마을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신사의 이름을 따온 곳이지요.

유배 기간 동안 스토쿠는 불교에 몰두했고, 190권에 달하는 경전을 옮겨 적으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교토에 자신이 필사한 경전을 모시고 싶어 했지만, 당시 군림하던 황제는 경전에 저주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스토쿠는 격분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 대극전이 전소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정의 관리 여러 명이 사망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스토쿠의 기일을 전후하여 재해와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심 가득한 원혼에 관한 전설이 널리 퍼지게 되었죠. 1868년, 메이지 천황은 스토쿠 천황을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교토에 모심으로써 그의 원혼을 달랬습니다. 곤피라산의 시라미네 신사는 스토쿠 천황에게 바쳐진 가가와현의 수많은 장소 중 한 곳입니다.

건물의 붉은색과 흰색 배색은 신사(神社)의 전형적인 양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붉은 도료에는 진사가 함유되어 있었는데, 이는 선명한 붉은색을 낼 뿐만 아니라 해충과 부패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악귀를 물리친다고 여겨지기도 했죠. 흰색은 순수함, 신성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시라미네 신사에서 뒷 신사까지 445개의 계단이 남았습니다.

이즈타마 신사

축하합니다! 곤피라산 신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곳은 뒷 신사라는 뜻의 ‘오쿠샤’라고도 알려진 이즈타마 신사입니다.

이곳에 모셔진 신은 16세기 곤피라산을 부흥시킨 최고 신관을 신격화한 ‘이즈타마히코노미코토’입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사랑해 마지않는 곤피라산을 지키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산 속에 산다고 전해지는 힘있는 신화 속 정령인 ‘텐구’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텐구는 종종 날개와 새의 얼굴, 혹은 긴 빨간 코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텐구의 두 얼굴을 나타내는 두 가지 텐구 가면이 신사 왼쪽에 있는 절벽 높은 곳에 걸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사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하고 있지만, 이 신사는 곤피라산의 본전이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신사를 영원히 보살피겠다던 이즈타마히코의 약속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순례길이 모두 끝났습니다. 오디오 투어가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럼 조심해서 내려가시고, 오셨던 길을 따라 여러 장소들을 다시 한번 즐겁게 둘러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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